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양준혁/논란 및 사건사고 (문단 편집) === 해태로의 트레이드 거부 === [[임창용]]과의 트레이드 건 때 공개적으로 은퇴 의사를 밝히며 자신이 삼성을 위해 2년을 군복무하였다고 하여, 이 때 붙은 별명이 '푸른 피의 사나이'. 해외 진출 의사를 모색할 정도로 삼성구단 및 기업에 대한 원망이 하늘을 찌를 듯 했으며, 양준혁의 말에 따르면 이 트레이드는 나중에 선수협 창설과 FA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동기 중에 하나가 됐다고 한다. [[임창용]]과의 트레이드로 인해 삼성에서 해태로 가게 되자 또 '자기를 용병으로 생각해달라' 며 끝까지 삼성맨임을 고집하였다. 양준혁의 트레이드 거부는 해태팬들의 엄청난 분노를 불러일으켰는데, 팀 투수진의 기둥뿌리였던 [[임창용]]을 내주고 데려오려는 선수가 입단거부에 은퇴를 운운하는 것은 해태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. --근데 애초에 해태로 트레이드는 모든 선수들이 혐오하긴 했다. 해태 트레이드 때 은퇴의사 안 밝힌 선수가 없을 지경--[* 똥군기+거지구단의 시너지가 엄청났다.] 당시의 해태는 자금난으로 [[최희섭]], [[김병현]], [[서재응]] 등의 지역 유망주들을 놓치고 [[박재홍(야구)|박재홍]]의 지명권을 현대에 빼앗기는 등 돈없는 구단의 설움이 하늘까지 닿은 상태였다. [[김응용]] 감독이 '1년 뒤에 놓아주겠다'고 약속하면서 동시에 1993년 입단 당시의 삼성-양준혁 밀약을 공개거론하며 압박하자 양준혁은 결국 해태 입단에 동의한다. 막상 와서는 친척들이 인근에 많이 산다며 안정을 찾았는지 태업을 하진 않았다지만[* 실제로 해태에서 양준혁은 .323의 타율에 32홈런-21도루, 그리고 본인의 한 시즌 최다 타점, 득점 기록인 105타점-96득점을 올리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.], 바로 1년 후 양준혁이 돈 많은 서울 연고 구단인 LG로 옮기자 해태-KIA 팬들의 분노는 더욱 격렬해졌다. 실제로 [[야구 갤러리]] 등지에선 기록은 좋았으되 곧바로 떠나버린 이러한 행태를 비꼬며 푸른 피의 홍어, 타이거즈 레전드로 부르며 조롱한다. 사실 해태 팬 입장에서 보자면, 개인 사정이야 어쨌건 [[임창용]]을 희생한 대가로 데려온 양준혁을 데려왔는데 고작 1년 동안 사용한 거니 격분할 만하다.[* 다만 이쪽은 [[김응용]] 감독이 약속대로 보내준 것이기에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.] 게다가 양준혁의 트레이드 카드 데려온 선수가 하필이면 [[손혁]]이었다. 이 [[손혁]]마저 해태 입단을 거부, 은퇴를 선언하고 야구계를 떠나면서 해태 팬들과 양준혁은 완전히 갈라서버리고 만다. 이후 양준혁과 얽혀 해태 레전드 선동열이 삼성 팬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까이자 양준혁에 대한 해태-KIA 팬들의 분노는 다시금 하늘을 찔렀다. 게다가 자서전에서마저 '해태에 가는건 유배가는 느낌'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탓에 사실상 해태-KIA 팬들과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절반 정도 지나간 느낌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